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왜곡/무장폭동설 (문단 편집) ==== [[프랑스 혁명]]처럼 [[성즉군왕 패즉역적|이기면 혁명이고 지면 폭동]]이다? ==== 의외로 5.18의 가치를 부정하는 극우 세력뿐 아니라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온건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들도 종종 이러한 오류에 빠지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적 맥락부터 배경과 전개, 결말까지 전혀 다른 두 사건을 무리하게 대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 [[5.18 민주화운동]]의 목적은 [[프랑스 혁명]]처럼 기존 체제를 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전두환의 [[쿠데타]] 및 정치적 탄압을 중단하고, 계엄령을 폐지하며,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회복하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곧, 프랑스의 경우는 왕국의 기존 체제를 뜯어고치려는 쪽이 [[반란]] 세력이었지만, 5.18 민주화운동 시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국민주권을 헌법에 박아넣고 군의 정치개입을 정당화하는 조항 따위도 없는 민주공화국'''이었으므로 내란을 일으킨 군인들이 [[반란]]세력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란]]과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것과는 무관하다. 예컨대 북한이나 중국 혹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같은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무장봉기를 한다면, 그 정부 입장에서는 폭동이 될 수 있다. 다른 예로 [[4.19 혁명]] 당시 [[이승만]]은 분명히 독재자였으나, 그 이전에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그 시점에서의 대한민국 헌법으로부터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상태였으니 내란 수괴라고는 볼 수 없다. 단지 '''그 당시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비민주적이었을 뿐'''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로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도 독재자이자 전쟁범죄자이지만, 어쨌든 합법적인 선거로 당선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체제에서 규정하는 절차를 교묘히 이용해 자기에게 권력을 집중시켰으니 ([[뮌헨 폭동]]을 제외하면) 내란 수괴라고 볼 수는 없다. [[전두환]]이 [[내란]] 범죄자인 것은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의 헌정체제가 군인의 쿠데타나 정치 개입을 허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군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며, 그 이후에 설사 독재를 유지하지 않고 곧바로 민정이양을 했더라도 그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이는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의 헌법에 반한 [[5.16 군사정변]]의 [[박정희]]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정치적, 역사적 가치 평가와는 무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혁명'이 아닌 '민주화 운동'이라는 평가는 5.18의 위상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지향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 혁명 기간을 좀 길게 잡으면 [[바렌느 배신사건|국왕부부가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려다 잡힌 사건]]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국왕 일가는 혁명세력에게 확실히 열세였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에 외국과 동맹을 맺는 건 '''프랑스 왕국의 유일한 주권자로서 내란을 진압하기 위한 외교행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반대로 시민군이 외신 기자들과 연대했다는 이유로, 아니 설령 미국의 도움을 받아 신군부와 싸웠다 할지라도 그게 내란의 주체와 저항세력의 위치를 바꿔놓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5.18 당시 시민군은 어디까지나 먼저 반란을 일으키고 먼저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려 든 신군부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되었고, 본격적인 총기학살 이전까지는 '시민군 조직' 자체가 없었으며, 광주 밖으로 나가서 청와대를 향해 진군하지도 않았다.[* 사실 막말로 전두환이 먼저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정통성 없는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진짜 청와대로 가서 전두환을 끌어내렸다]] 해도 내란도 폭동도 아니다. 단, 현실적으로는 그 와중에 시위대가 진행 경로 상의 다른 지역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한국인|다른 주권자들]]에게 폐를 끼쳐 폭동으로 진화했을 여지는 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내란행위 |||| 내란의 주체 || || [[프랑스 대혁명]] - [[1792년 8월 10일 봉기]] || [[자코뱅주의]]자 및 과격 혁명가들 || ||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 [[전두환]] 세력 || 이 내용과 유사한 내용을 [[김재춘]]([[5.16 군사정변]], 제3대 [[중앙정보부]]장)도 언급한 바 있다. >김종필, 김재춘, 김계원, 장세동 씨 등 10여 명이 둘러앉았다. 전두환 씨는 불참. >국회가 화제가 되고 얘기는 80년 광주문제로 옮아갔다. >장세동(전두환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장 경호실장) 씨가 광주사태는 진주민란이나 홍경래의 난 같은 것이라는 취지로 80년 5월의 광주상황을 설명해갔다. 그러자 김재춘씨(3代 정보부장)가 무뚝뚝하고 직선적인 성격 그대로 ''''무슨 그따위 얘기를 아직도 하고 있는 거요. 여기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가. 당신네들이 총칼 들고 정권 잡가고 저지른 짓을 무슨 홍경래 반란이라고?''''하며 내쏘았다. 그 자리에서 어떤 분은 웃으며 일어서면서 '국회에서 특위 조사할 것도 없이 결론이 이미 나와 버렸군' 하여 웃고 헤어졌다. (당시의 한 참석인사) >---- >김충식, 2012, 남산의 부장들, 782 김재춘은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을 정도로 [[반공주의]]가 강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도 내란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분명히했고, 내란행위의 주체를 왜곡하려하자 직선으로 반발했다. 내란행위의 주체가 광주시민이 아니라 [[전두환]] 세력이라는 것은 [[5.16 군사정변]] 세력한테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흔히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은 [[프랑스 대혁명]]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해이다. [[이승만]]이나 [[전두환]] 정권의 국가 폭력을 규탄하는 사람 중에선 [[프랑스 대혁명]] 수정주의자[* 여기서 수정주의는 프랑스 학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1980년대의 프랑스와 퓌레다. 한국에선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학문은 1980년대 기준도 새로운 편이다.]도 있으며, [[부흥카페]]에선 프랑스 대혁명의 [[방데 학살|방데 대학살]]을 이승만 정권의 제주도 초토화 작전[* [[제주 4.3 사건]] 이후 이승만 정권이 계엄령을 한 후 벌인 대량학살 작전이다.]과 비교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